해남

◇의병 정신이 뿌리내린 순천
조선 말기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순천 일대는 호남 의병 운동의 핵심 무대였다. 강진원 의병장을 비롯해 일본군에 맞서 싸우다 순국한 권대화 의병, 낙안군수와 진관병마첨절제사를 지내며 대한독립의군부에 참여한 임병찬 등은 순천이 배출한 대표적 의병 인물들이다.각종 의병사 연구 자료에서도 순천은 곡성·구례·여수·고흥·광양과 함께 전남 동부권 항일 무장투쟁의 중심지로 평가된다.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운 순간, 순천의 인물들은 망설임 없이 ‘의’를 선택했다.
◇독립운동의 현장에서 빛난 순천 사람들
순천의 인물사는 3·1운동과 이후 무장 독립투쟁에서도 두드러진다. 1919년 4월 순천 장터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한 박항래는 태극기 대신 백지를 흔들며 군중을 이끌다 체포돼 옥고 끝에 순국했다.주암면 출신 백강 조경한은 만주에서 100회가 넘는 무장 항일전을 전개했으며,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다. 이처럼 순천은 이름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시대의 요구에 응답한 인물들을 꾸준히 배출해온 도시다.
◇‘인물이 사라졌다’는 말의 역사적 배경
오늘날 순천에서 종종 회자되는 ‘인물이 사라졌다’는 표현은 단순한 체감이 아니라 역사적 상처에서 비롯됐다. 일제의 혹독한 탄압으로 수많은 인물들이 목숨을 잃거나 활동을 중단해야 했고, 해방 이후에는 여순사건을 거치며 좌우를 가리지 않고 지역 인사들이 희생되거나 침묵을 강요받았다.이 과정에서 순천의 인물들은 기록되지 못한 채 잊혔고, 도시는 스스로의 정신적 자산을 드러내지 못하는 시간을 겪었다.
◇‘인물 도시’ 순천을 다시 세우다
순천이 말하는 인물의 기준은 분명하다. 위기 앞에서 물러서지 않은 용기, 정의를 위해 감내한 희생, 지역과 공동체를 밝힌 사상과 실천이다.순천학연구소는 이러한 정신을 현재와 미래로 잇기 위해 ‘순천 인물 프로젝트’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과거의 인물을 기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의 삶과 신념을 오늘의 가치로 재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허석 상임대표는 "순천의 인물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도시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인물박물관과 전문 도서관 건립이 필요하다”며 "박물관은 인물들의 생애와 기록을 보존하고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도서관은 순천 출신 작가·지식인·운동가들의 자료를 집적해 학술 연구의 기반이 되어야 한다”고 향후 비전을 밝혔다.의로움이 축적된 도시, 순천. 인물을 자랑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이미 역사 속에 충분히 증명돼 있다.
사진 - 순천학연구소 순천바로알기
장형덕 기자 gas4036@naver.com






편집 : 2026.07.28 (화) 02:23


